우린 모두 ‘갑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우린 모두 ‘갑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슈퍼갑질; 2014.12.31 22:28 입력

박철 pc2000u@hanmail.net

‘직원을 종 취급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결국 구속됐다. 그의 슈퍼갑질은 ‘땅콩 회항’이란 이름으로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됐다. 절제 없고 천박한 재벌3세의 횡포에 직면한 승무원들은 인간적 치욕으로 씻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격노한 철부지 오너의 ‘직원 얼차려’에는 300여 승객들이 볼모였고, 그들의 위험과 불편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은 책임을 승무원에게 전가하고 관련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한심한 작태로 일을 키웠다. 더구나 국토교통부 조사관에게 거액을 건넨 정황이 포착돼 해당 조사관이 구속됐다. 조 씨도 항로변경·안전운항저해폭행·형법상 강요·업무방해 등 4개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최대 7년 6개월형까지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여론이 워낙 나쁘다.<div><table class="__se_tbl_ext" align="center" _id="news_image" style="border: 1px solid rgb(210, 210, 210); border-image: none; margin-top: 15px; margin-bottom: 15px;"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0"><tbody><tr><td><div style="margin: 8px;"><img alt="우린 모두 ‘갑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width="515" align="absmiddle" src="http://www.hytoday.kr/PEG/15472128859460.jpg"></div></td></tr></tbody></table>  얼마 전 지역의 개인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오너의 불굴의 ‘갑질’에 결국 손을 들었다. 평소 사장의 남다른 ‘총애’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던 그였다. “그 영감, 모든 직원을 다 자기 종으로 알아.” 최근 입에 오르내리는 ‘갑질’의 시대착오적 속성을 한 마디로 함축한 말이 아닐까 한다. ‘갑을 관계’는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얽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나타난다. 사람은 ‘갑’의 입장이 될 때 놀랄 만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당하는 쪽은 필연적으로 뒤따를 일방적 피해, 즉 후환이 두려워 거의 반항하지 못한다. 갑은 이런 상대의 약점을 자기 만족과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심지어 이런 무례하고 못된 행태를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야만적이고 비열한 일이다. 재벌1세들은 시대의 가난과 역경을 함께 겪어내며 일가를 이룬 경우가 많다. 험난한 길을 걸으며 절제의 가치를 배운다. 자기철학이 있는 ‘상인’인 것이다. 2세들도 부모들의 그런 고생을 함께 부대끼며 무언지교(無言之敎) 속에 자라 자기제어가 어느 정도는 된다. 3세, 4세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등 따시고 배 부른’ 부와 특권이 주어진다. 마음에 들면 가지고, 싫으면 안하면 된다. 주변 누구도 이를 거스르고 애써 깨우쳐주려 하지 않는다. 자기밖에 모르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탄생한다. 그래서 이번처럼 자식은 망나니짓 하고 부모는 ‘잘못 가르친 죄’로 머리를 조아리는 광경이 되풀이되는 거다. 드라마 속 재벌 2,3세의 모습은 현실과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조선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 가문의 유명한 육훈(六訓)이 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 ‘3대 부자 없다’는 속설을 뛰어넘은 명문가로 길이 회자되는 저력이 어디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제가(齊家)의 지혜다. 여기엔 돈이 아닌 사람의 향기가 어려 있다. 오늘날 재벌가의 모습에 비춰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무한 이윤 추구’가 기업의 본질이라는 자본주의의 맹신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시대다. 기업뿐 아니라 전통적인 ‘절대 갑’으로 군림하던 관(官)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갑을’ 관계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상생경영이나 착한, 사회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움직임도 미약하나마 열정적으로 일고 있다. ‘갑을관계 없는 세상’의 해답은 무엇보다 우리 전통철학과 심성에 실마리가 있다. 경천애인, 홍익인간 같은 세계보편적인 고품격 철학의 기저에는 인본(人本), 인간 존중이 깔려 있다. 돈과 물질적 이익을 위해 사람과 자연의 희생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덫을 벗어나, 사람을 모든 가치의 최우선에 놓고 ‘더불어 잘살자’는 우리네 심성과 철학을 회복해 이를 사회시스템화할 때 갑을관계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을 믿는다. 새해엔 부당한 갑질에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 없고, 양과 같은 분들로 넘쳐나는 세상이길 기원한다.  박철/문화칼럼니스트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