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유감-곽호자

꽃다발 유감-곽호자: 2019.03.18 14:21 입력

<table align="center" class="__se_tbl_ext" _id="news_image" style="border: 1px solid rgb(210, 210, 210); border-image: none; margin-top: 15px; margin-bottom: 15px;"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0"><tbody><tr><td><div style="margin: 8px;"><img alt="꽃다발 유감-곽호자" width="478" align="absmiddle" src="http://www.hytoday.kr/PEG/15528863933930.jpg"></div><div _id="news_caption" style="letter-spacing: -1px; padding-right: 8px; padding-left: 8px; font-family: verdana,dotum; font-size: 12px; font-weight: normal;">▲사진/픽사베이</div></td></tr></tbody></table>손녀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시내 외곽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도로는 차들로 혼잡하다. 학교 정문 앞은 이미 차들로 장사진을 친다. 하는 수없이 시내 변두리로 한참을 돌아 겨우 주차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선다. 꽃다발을 파는 사람들이 다투어 앞을 막는다. 그렇잖아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손녀에게 예쁜 꽃송이를 안겨 주고 싶었던 터라 다양한 꽃송이 중에 한 묶음을 골라들었다. 허겁지겁 식장인 이층 강당으로 오르니 입구서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축하객으로 북새통인 강당은 내 재주로 강당 안 손녀와 눈도장 찍기는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행히 하나같이 밝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 바가지만한 조화장미 한 송이를 높이 들고 씩씩거리며 군중을 파고드는 젊은 여자. 무리지어 온 젊은 청년들의 이벤트 소품들. 꽃다발이 지친 듯 손아귀에서 졸고 있다. 초봄 싸한 날씨와 달리 웅성거리는 강당 입구는 후끈하다. 늙은 내 또래들은 숨죽이고 구석에 서있지만 싱그러운 저 젊음이 부럽다.  식이 끝난 모양이다. 손녀가 나온다. 손을 치켜들고 아이를 불렀다. 지 애비를 제치고 할미가 더 흥분한다. 그리해도 되는 날이거니 눈을 맞추려드는데 정작 반가운 대상은 따로 있다. 손녀의 남자 친구이다. 교정 곳곳에 졸업생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평소에 잘 입지도 않던 바바리를 입은 남편은 선그라스까지 꺼내 멋을 부린다. 손녀는 그런 모습의 할아버지를 보고선 엄지척이다. 축하객에 둘러싸여 몸 둘 바를 모르는 손녀. 도취된 기쁨에 얼굴은 분홍 꽃물이 든다.    담임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간 손녀를 기다린다. 하마터면 흥분된 분위기로 인해 담임선생님의 존재를 잊을 뻔했는지 재빠르다. 허허로움을 달래고 있을 담임에게 제자가 달려와 준 잠깐의 감동은 어땠을까.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손녀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달려온다. 꽃다발과 졸업장과 상장을 든 손녀는 이제 대학생이 된다. 남자 친구란 녀석이 머쓱한 표정으로 가족들 틈새로 기웃거리는 모습이 밉지는 않다. 세상 참 좋아졌다.   많고도 많던 차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혼잡하던 교문 일대가 다소 느슨하다. 꽃샘바람이 차가워 옷자락을 여미는데 문득 맞은편 보도로 걸어가는 부녀가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와 딸. 부녀지간이 틀림없어 보인다. 졸업한 딸을 데리고 마을 쪽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열에 열사람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졸업식 날이다. 이런 날 딸내미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줄 만도 한데 그냥 그렇게 데리고 간다. 여학생 아버지의 처진 어깨며 유독 굵은 주름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 흔한 꽃 한 송이도 들지 않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다. 그들 부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쉬이 거두지 못한다.  졸업식장인 고등학교 운동장은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웠다. 학생들 표정마다 상기되어 있었다. 남 여학생들의 스스럼없는 어울림이 시대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슬리게 보이지 않았다. 정든 급우와 헤어진다는 무거운 감정으로 조금은 슬프게 느껴졌던 과거의 형상은 눈비비고 봐도 볼 수 없었다. 다들 들떠 있었다. 학창시절의 마감인 졸업식이 새로운 시작의 팡파르였다고나 할까. 이별파티를 연극처럼 끝내고 돌아들 갔다. 졸업생들의 환호, 부모형제들의 덕담이 오간 풍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부녀지간. 그들이 예사롭지 않아 마음 무거웠던 하루가 간다.    손녀의 졸업은 가족들의 축복으로 채워졌다. 부족하거나 넘치지도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사치스럽게 보여 질수도 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해도 손자 손녀는 넘치는 면이 없지 않다. 부족한 것보다 풍족한 편에 무게를 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절약하는 정신이 부족하지만 훈계하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계가 따른다.  꽃다발도 없이 아버지와 집으로 걸어가던 그 여학생과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손녀와의 대비된 모습. 손녀에게 오버랩 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양심 때문이다.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도와줄 수 없는 여건에 이르러 발동한다. 평등하지 못함에 대한 주장을 하다보면 자칫 교만으로 또는 우월감으로 오해를 야기하는 함정도 있다.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그것이 새로울 것도 없는데 나는 웬일로 오늘만은 낯설다. 졸업식장에서 부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래도 어쩌랴.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생기는 것을 모르랴. 해는 사계절 내내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리바꿈을 한다. 늘 ‘그 자리’가 제자리가 되지 못하는 이치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이곳 경제가 바닥을 친다. 실직자가 전국 일위라는 불명예도 떠안았다. 절망과 희망의 교차를 휘젓는 이곳에도 자리바꿈의 햇살이 비추일 것으로 믿는다. 이월 알싸한 바람이 부녀가 있는 쪽으로 회오리친다. 길가에 꽃다발 한 뭉치가 뒹굴고 있다. 누가 버린 꽃일까. 바람이 머리카락을 세차게 흩날려 버린다. 갑자기 춥다. 사위가 멀뚱거리는 내 앞에 차를 세우며 말한다. “뭘 보시고 계세요?” 2019. 2월 손녀 졸업하는 날.  ■약력곽호자(수필가) -거제 출생 -전 초등 교사 -거제대학 평생교육 수필 창작 수료 -<수필과 비평> 2011년 3월 등단 -계룡 수필 문학회 회원 -눌산 시 창작 수료 -수필과 비평 거제시지부장